이스미 철도와 ‘무민 열차’

여러분은 ‘무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무민’은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이 지은 작품으로 소설과 만화 시리즈로 나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달에는 무민 시리즈에 등장하는 ‘무민의 계곡’처럼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로컬선 ‘이스미 철도’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았습니다.
이스미 철도는 지바현(千葉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소 반도(房総半島) 남부를 달리는 로컬선으로 한 량 또는 두 량이 전부인 작은 열차입니다. 시발역인 오하라(大原)역과 종착역인 가즈사나카노(上総中野)역 사이의 14개 역을 오가는데요. 총 길이는 26.8km로 평일에는 주로 고등학생들과 쇼핑에 나선 이 지역 고령자들이 이용해 한산하지만 주말과 봄, 가을의 관광 시즌에는 관광객과 철도 팬으로 만원을 이룹니다.
과거 일본에는 전국 각지에 수많은 로컬선이 있었지만 점차 운행이 중단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것들도 대부분 사정이 어렵습니다. 1988년에 제3 섹터 방식(지역 개발을 위해 정부•지방공공단체와 민간 기업이 공동 출자해 설립함) 철도로 개통한 이스미 철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자가 계속되었는데요. 2009년에 외국계 기업 출신의 도리즈카 아키라(鳥塚亮) 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참신하고 기발하고 아이디어를 도입했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지금은 여러 로컬선 중에서도 이색적인 존재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무민 열차’도 도리즈카 사장의 획기적인 기획 중 하나로 무민의 이미지 캐릭터 사용권을 획득하여 시골스러웠던 연선 풍경에 ‘일본의 무민 계곡’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열차의 차체와 내부에 무민의 등장인물들을 그린 ‘무민 열차’를 운행하였고 결국 여성 팬과 로컬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무민 계곡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있다!’

이스미 철도의 캐치프레이즈는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있습니다(ここには、何もないがあります)’입니다. 흔히 여행을 하면 유명 관광지나 명승지 등을 방문하기 마련인데 ‘일본의 무민 계곡’에서는 그러한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찻길을 따라 논밭과 계곡, 기와지붕이 눈에 띄는 민가뿐. 마치 고도 경제성장기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입니다. 자동차•컴퓨터•글로벌 시대라며 매일같이 경쟁하듯 서둘러야 하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야 말로 현대인이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관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달까요.
저는 자유롭게 승하차할 수 있는 ‘1일 프리 승차권(1,000엔)’을 이용했는데요. 취재를 도와준 이스미 철도의 다나카 시호(田中しほ) 씨가 추천한 지역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역에서 열차를 타고 차창 밖 풍경에 넋을 놓았다가 때로는 내려서 걷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곳만의 매력을 만끽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스미 철도
JR도쿄(東京)역에서 소부센(総武線)•소토보센(外房線)을 타고 오하라 역에서 하차한 뒤 이스미 철도로 환승(약 2시간). 편도 1,663엔